< 책 개관 >
< 책 선정 이유 >
< 장소/시간 >
< 느낌/영향 >
< 후기 > ; 평점, 다시 읽고 싶은 정도, 충실도, 구매욕구
< 책 개관 >
- 책 제목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악마 / 신부 세르게이
- 출판연도 : 2016
- 출판사 : 문예출판사
- 쪽수 : 264
- 저자 : 톨스토이 저/이순영 역
- 분류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책 선정 이유 >
'바보 이반'이란 작품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직까지 내 주위에선 만나지 못했다. 사교력의 한계일 것이다.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동화이다. 어릴 적 도서관에서 손닿는 대로 책을 읽었기에 동화인지 그냥 소설인지도 인식하지 않았다. 그냥 이반의 삶이 참 재미난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여러 번 읽어서 책 이름도 뚜렷이 기억난다. 다만 이반의 캐릭터성만 기억날 뿐, 배경이나 줄거리는 기억에 없다. 다시 읽어볼까 하다 톨스토이의 읽어보지 못한 책을 발견한다.
< 장소/시간 >
2020년 12월 첫 주, 회사 업무가 바쁘던 때라 책 한 권 읽기가 힘들었다. 계획대로라면 '룬샷'도 읽고, 다른 한 권도 더 시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계획이니까. (룬샷까지 읽을 시간이 없었고, 다른 한 권은 더 시작했다. 그 책은 '실천'을 해야만 진도가 나갈 수 있는 책이라 블로그에 올릴 수 있으려나 싶다.)
저녁에 그 날 읽은 분량 분을 가족이랑 이야기했다.
'아직 이 부분이 와 닿지 않아. 왜 그랬을까?'
'19세기 초의 러시아와 내가 사는 시대의 갭 차이일까?'
읽는 동안 혼란스러움이 일었다.
< 느낌/영향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줄거리
이반 일리치는 제정 시대 부패한 러시아 관료사회에서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데 여념이 없는 야심찬 관리이다. 어떤 관직에 임명되든, 그는 그 자리의 조건에 자신을 완벽하게 맞추고 그 대가로 화려한 상류 사회와 그 사치의 위안을 받는다. 특히 그는 카드 놀이를 좋아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은 뒤 이반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결국은 응접실의 소파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반이 겪는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결국 이반은 제대로 말을 하는 대신 뜻없는 비명만을 질러대 가족들을 경악시킨다. 죽음이 이반의 무신경했던 영적 여행의 끝을 위로해주지는 못한다. 삶과 재산, 그리고 현실이 그의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누릴 수 있었던 인간 관계의 친밀함마저 모두 버린 그에게 죽음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구성 : 역순행적
이반 일리치의 죽음 - 과거(살아온 시간, 다친 경위) - 죽는 순간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는다. 그의 죽음으로 애도를 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죽음이 자신들의 삶에 미칠 영향만 생각한다.
*회사 동료 : 이반 일리치의 '고위급 판사' 직위에 누가 가게 될까? 그렇게 한 명씩 승진하게 되면 밑에 자리에 친인척을 데려 올 수 있지 않을까?
*이반 일리치의 부인 : 남편이 죽게 됨으로써 벌이가 없다. 연금을 얼마나 받게 될지는 알고 있지만,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 장례식에 온 김에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없다는 걸 알고 바로 자리를 뜬다.
*일리치의 지인들 : 그의 죽음보다 카드 놀이에 더 관심이 많다.
< 과거(살아온 시간, 다친 경위) >
이반 일리치는 형제들보다 공부를 잘 했다. 부모가 원하는 성공의 삶을 보란 듯이 이어 나가며, 더 많은 연봉, 더 높은 지위를 향해 달린다. 사교계에서 '이쯤 되면 괜찮은' 여자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는다.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더 넓은 집을 사서 꾸미게 된다. 본인의 인생을 현실에 소소하게 불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한다.
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도배를 하다 다친 부위가 너무 아파와서 나중에는 걷지도 못하게 된다. 그는 비명을 지를만큼 아픈데, 가족들은 '그를 위하는 척'만 할 뿐, 실질적인 공감을 해주지 못한다.
이 부분은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고통의 크기는 본인만 안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고, 매일 매 순간 아프다고 소리만 지르는 상대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더 이상의 마취도 듣지 않는 사람에게 그 짜증을 다 받아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약속이 있어 집을 비워야한다고 미리 말을 했지만, 일리치가 화를 내려 한다. 나중에서야 '미리 말했음'을 기억하지만, 그래도 짜증이 난다. 이반 일리치에겐 가족이나 의사의 행동이 '척'을 하는 것처럼만 느낄뿐이다. 본인도 판사로 일을 할 때 비슷하게 경험했음을 떠올리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 죽는 순간 >
고통과 싸우는 이반 일리치의 심리 상태를 주로 다루는 부분이다.
'내 삶 전체가, 의식적인 내 삶이 정말로 장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하지?'
'만일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망쳐놓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바로잡을 기회조차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래, 모든 것이 잘못되었던 거야. 하지만 상관없어. 올바른 것을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올바른 것'이 대체 뭐지?'
'그래, 내가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구나. 내가 죽고 나면 훨씬 괜찮아질 거야.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 있지?'
본인이 죽음으로써 '더 이상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에 환호하며 죽는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죽음을 생각
이반 일리치는 와병 중에 죽었다.
친구 아버지는 목욕 중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는 분은 '내일 다시 보자'하고 그 내일에 돌아가셨다.
죽음은 여러 모습이다. 준비할 시간을 주기도 하지만, 주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살면서 늘 생각하라고? 그러기엔 삶이 너무 바쁘지 않은가? 항상 죽을 때를 대비하라니 받아들이기 힘들다.
톨스토이의 작품도 좋아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도 나쁘지 않았는데,
글로 정리하려니 화가 치민다.
'죽음'이란 존재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화를 내는 쪽인 것 같다. 아마 살면서 죽음의 공포를 여러번 느껴서인 듯도 하다.
#톨스토이와 죽음
톨스토이는 귀족 계급으로 태어났다.
금수저라 화폐관점으론 부러울 게 없는 계급에 속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죽음'을 슬쩍 또는 깊게 다루는 책이 있다.
어머니는 2세 때, 아버지와 할머니는 9세 때 돌아가셨다. 커서는 군대에서 전쟁에 참전했다. 그 때의 비참함을 소설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경험으로 생각이 진일보하게 된 건가 싶다. 농민 자녀들도 공부할 수 있게 교과서를 만들고,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당시 시대를 꼬집는 소설을 출판한다.
<초기 문학 > 당시 러시아의 문제를 꼬집는 소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후기 문학 > 죽음의 공포를 종교로 극복하려는 노력. 절제, 간소한 생활로 톨스토이 주의 확립. '참회록, 교회와 국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후기 >
- 평점 : 9/10
- 다시 읽고 싶은 정도 : 의사 있음.
- 충실도 : 내용 충실
- 구매욕구 : 10/10
; 어렵다. 죽음이.